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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ney Notes

AI 시대, 제품을 어디까지 다듬어야 할까

제품을 다듬는 시간과 가치를 확인할 시점 사이에서, AI 시대의 개발자가 마주하는 양쪽의 위험을 생각한다.

  • AI
  • 개발
  • 제품
오프화이트 종이 위에서 작업과 검토 지점을 지난 주황색 경로가 목표 표식에 닿는 콜라주.

제품을 만들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화면이 바뀌는 순간의 움직임, 잠시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이어지는 작업, 예상과 다른 결과 앞에서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여지. 하나씩 보면 작은 차이지만, 사람이 제품을 쓰는 동안에는 그 차이들이 모여 하나의 경험이 된다.

나는 이런 부분을 쉽게 지나치지 않는 태도가 개발자의 장인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기능이 작동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사람이 쓰기에 자연스러운지, 중요한 순간에 믿을 수 있는지까지 살피는 일이다.

그런데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가치를 만들고,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는가. 사업이라면 결국 답해야 하는 질문인데, 나는 아직 충분히 답하지 못했다.

이제는 개발을 멈추고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가치를 검증하기 위해 제품을 만드는 것인지, 검증하지 않은 채 내가 하고 싶은 개발을 계속하는 것인지 스스로 묻게 된다.

그렇다고 지금 만드는 것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술을 이해하고 제품을 다듬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낯선 제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자기 생활에 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다만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과, 그 가치가 실제로 확인된 것은 다르다. 지금의 고민은 그 사이에 있다.

잘 깎는 일과 계속 깎기만 하는 일

개발자들 사이에는 ‘야크 털 깎기’라는 말이 있다. 원래 하려던 일을 위해 다른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작업에 또 다른 준비가 필요해져 점점 멀리 돌아가는 상황을 뜻한다. 각각의 일은 처음의 목적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그 목적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는 것이다. (MIT CSAIL)

제품을 세심하게 다듬는 일을 모두 그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다. 사용자가 하던 일을 잃지 않게 만드는 것, 잘못된 결과를 바로잡을 수 있게 하는 것, 중요한 선택을 이해하고 내릴 수 있게 돕는 것은 단순한 꾸밈이 아니다. 그런 부분까지 갖춰져야 비로소 쓸 만한 제품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어려운 것은 쓸모없는 작업을 골라내는 일만이 아니다. 분명 도움이 되는 작업이지만, 지금 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AI가 만든 결과를 사람이 되돌릴 수 있게 하는 일은 믿고 써볼 조건이 될 수 있다. 그 기능을 위해 내부 구조를 정리하는 일도 필요할 수 있다. 다만 구조를 다듬는 다음 단계가 또 다른 정리를 부른다면, 지금 지키려는 경험과의 거리를 다시 재야 한다.

조금 더 손보면 나아질 수 있다. 미리 정리해두면 다음 작업이 편해질 수도 있다. 하나씩 놓고 보면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 이유들을 모두 받아들이다 보면, 제품을 내놓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장인정신과 끝없는 준비는 작업하는 동안에는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 둘 다 시간을 쓰고, 문제를 풀고, 무언가를 개선한다. 그래서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지금의 작업이 사람이 제품의 가치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준비되었다고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도 물어야 할 것 같다.

작업 노트와 모듈, 평가 도표가 준비 작업의 고리로 이어지고 제품 결과에 닿는 주황색 경로

각 작업에 이유가 있어도, 원래 확인하려던 질문과의 거리는 다시 살펴야 한다.

검증을 위한 준비가 검증을 늦출 때

AI 도구를 쓰면서 이 경계가 더 어려워진다고 느낀다. 만들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고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다. 전에는 나중의 일로 남겨두었을 법한 개선도 지금 해볼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런 변화 속에서 사용자 경험과 품질을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기능들이 어떤 경험으로 이어지는지를 더 세심하게 봐야 한다고 느낀다.

그런데 바로 그 생각이 출시를 어렵게 만든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으니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다. 사람에게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려면 이 정도는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검증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완성도가 조금씩 높아진다.

내가 느끼는 압박은 여기에 있다. 구현할 수 있는 속도는 빨라졌는데, 제품을 내놓기 전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품질의 문턱도 함께 높아진다. 경쟁의 속도를 따라가려고 더 잘 만들려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에게 보여줄 시점은 오히려 멀어진다.

그렇다고 무조건 빨리 내놓으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충분히 완성될 때까지 혼자 다듬으면, 실제로 쓰는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배울 기회가 늦어진다. 내가 오래 붙들었던 부분보다 훨씬 단순한 것에서 가치를 느낄 수도 있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이유로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만나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반대로 서둘러 내놓은 제품에서 사람이 하려던 일을 끝내지 못한다면, 그 반응을 해석하기도 쉽지 않다. 제품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인지, 필요했지만 제대로 써볼 수 없었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품질이 부족하면 가치가 있어도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완성도를 높이는 일도, 출시를 서두르는 일도 그 자체로 답은 아니다. 너무 오래 다듬으면 배울 기회를 놓치고, 너무 일찍 내놓으면 무엇을 배웠는지 불분명해질 수 있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주황색 경로가 검토 지점을 지나 사람들의 반응을 나타내는 표식에 닿고, 아래에는 끊어진 지름길이 놓인 삽화

늦게 내놓는 일과 너무 일찍 내놓는 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움을 어렵게 한다.

어디까지 다듬어야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경험을 제품으로 만들고 싶다. AI로 더 많은 시도가 가능해지는 시대에 제품을 포기하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믿음을 실제로 만들어 보여주고,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아직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의 시간과 가능성을 모두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믿음을 확인하는 일까지 계속 뒤로 미룰 수는 없다.

그렇다면 출시를 위해 찾아야 할 기준은 더 고칠 곳이 없는 상태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이 제품으로 하려는 일을 실제로 해보고, 그 경험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상태는 어디쯤일까. 나는 우선 그 질문에 답해보고 싶다.

하려던 일 하나를 끝까지 해볼 수 있는가. 그 과정에서 중요한 선택과 결과가 지켜지는가. 예상과 다른 일이 생겨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한 다듬기라면 필요할 것이다. 반면 다음 작업의 이유가 계속해서 ‘그 전에 이것부터’로 이어진다면, 지금 확인하려는 가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아직 내게 명확한 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업은 더 해야 하고, 어떤 작업은 사람이 써본 뒤에야 필요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것은 그 둘을 미리 구분하는 판단이다.

기술을 이해하고 다듬는 시간, 사람이 제품을 믿고 쓰게 되는 시간, 그 경험이 사업의 가치로 이어지는 시간은 서로 다르다. 아직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 시간을 전부 낭비였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출시를 미루는 이유로만 남아서도 안 된다.

지금 내가 붙들고 싶은 것은 그 사이의 판단이다. 더 다듬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아보는 만큼, 이제는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다음을 알 수 있다는 순간도 알아보고 싶다.

제품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마음이 제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Hooney (Seolhun)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Firstage를 운영합니다. 이곳에는 일하고 배우고 살아가며 무엇을 선택했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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