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쓰면서, 내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AI로 일을 마친 뒤, 다음에 다시 쓸 수 있는 판단과 작업 방식도 내게 남았으면 한다. 그 기반 위에서 만들고 싶은 서비스와 삶의 여유를 생각한다.
- AI
- 일하는 방식
- 창업

AI로 일을 마쳤을 때, 결과물과 함께 다음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내게 남았으면 한다. 같은 설명과 확인을 매번 처음부터 반복하지 않고, 그동안 쌓은 판단과 경험 위에서 다음 일을 시작하고 싶다.
AI와 일하는 나의 방식에 관해 발표한 적이 있다. 그때 전하고 싶었던 것은 특정 도구를 잘 쓰는 방법보다, AI에 무엇을 맡기고 사람은 무엇을 결정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내용은 앞서 「AI를 왜 쓰는가: 판단은 사람이, 반복은 AI가」에도 정리했다.
많은 사람이 AI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나도 그렇다. 다만 내가 더 관심을 갖는 것은, 그 문제를 얼마나 일관되고 효과적으로 반복해서 해결할 수 있는가이다.
한 번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과 다음 작업에서도 기대한 수준의 결과를 얻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과 작업 방식을 매번 새로 설명해야 한다면, AI를 많이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과물은 늘어나더라도, 다음 일을 시작하는 나는 여전히 같은 설명과 확인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완성했는지와 함께, 그 과정에서 내게 무엇이 남았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짧은 요청 뒤에 있는 것
발표에서는 아침 업무를 정리하는 daily를 사례로 삼았다.
아침에 일을 시작하려면 어제 어디까지 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지난 기록을 읽고, 티켓의 현재 상태를 살피고, 코드 변경과 리뷰 요청도 확인해야 한다. 자료가 각각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하기 전에 그 근거부터 모아야 한다.
발표에서 소개한 skill-sprint daily는 이 과정을 위해 준비한 절차다. 이전 daily 기록과 로컬 Git의 변경 사항, Jira의 티켓 상태, GitHub의 PR과 리뷰를 참고해 오늘 할 일과 오늘 범위 밖에 둘 항목을 정리한다. 결과를 자동으로 발행하거나 메시지로 보내지는 않는다. 우선순위와 빠진 맥락을 내가 확인하고 수정한 뒤, 기록으로 남길지 결정하는 방식이다.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짧은 요청 뒤에 무엇을 읽고, 어떤 순서로 정리하며, 어디에서 사람이 판단할 것인지가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skill-sprint daily라는 요청은 미리 정리한 맥락과 절차를 다시 불러온다. 발표에서는 skill을 반복해서 쓸 절차와 기준을 저장해 둔 것으로 설명했다.
오늘의 할 일 목록도 필요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 목록을 만드는 방식까지 남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날에는 바뀐 자료와 상황을 살피되,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까지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물과 함께 남기는 작업 방식
내가 말하는 AI의 자산화에는 결과물뿐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든 과정도 포함된다. 어떤 자료를 참고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판단했는지, 어떤 순서로 작업했는지, 무엇을 확인해야 완료라고 볼 수 있는지도 함께 남기는 것이다. 잘된 결과뿐 아니라 빠뜨린 항목과 그것을 발견한 방법도 다음 작업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발표에서는 AI에게 일을 맡기기 전에 맥락, 도구, 권한, 결과를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참고할 자료가 무엇인지, 그 자료를 어디에서 읽고 결과를 어디에 저장하는지, 어디까지 실행해도 되는지, 무엇이 남으면 끝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 조건들을 대화 안에만 두지 않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작업 환경으로 남기고 싶다. 판단 기준과 작업 절차는 문서와 선언형 코드로 정리하고, 반복해서 실행할 동작과 검사 방법은 도구로 연결하는 것이다. 필요한 자료에 접근하는 API나 MCP 연결, 작업을 실행할 개발 환경도 그 기반에 포함된다.
다만 파일을 만들었다고 곧바로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 작업에서 불러와 실행할 수 있어야 하고, 결과가 기준을 충족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문서에 적어둔 절차와 실제로 작동하는 절차 사이의 차이도 계속 살펴야 한다.
AI가 “다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을 완료로 보기로 했는지, 그 조건이 실제로 충족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부족한 결과에 맞춰 설명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처음 정한 기준으로 검사하고 수정해야 한다. 기준 자체를 바꿔야 한다면 그 이유도 명시적으로 남겨야 한다.
내가 바라는 일관성은 서로 다른 작업에서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결과를 처음부터 다시 확인하기보다, 반복 가능한 검사는 구조로 만들고 중요한 예외와 완료 여부를 사람이 판단하는 방식에 더 관심이 있다.
모델이 바뀌어도 내게 남아야 할 것
이런 환경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구에 대한 의존성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주요 AI 기업의 모델을 계속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델 자체의 성능과 규모를 놓고 경쟁하기보다, 그 발전을 이용해 내가 이해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더 잘 해결하고 싶다.
다만 모델을 사용하는 방식까지 특정 서비스 안에만 남겨두고 싶지는 않다. 새로운 도구를 선택할 때도 지금 얼마나 편리한지와 함께, 나중에 그 도구를 바꾸었을 때 무엇을 가져갈 수 있는지 생각하고 싶다. 내가 정리한 기준, 작업 절차, 실행 기록이 그 서비스 밖에서도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모델의 지능은 빌리되, 판단 기준과 업무 절차, 실행 도구와 검증 체계는 내가 관리할 수 있는 형태로 남기고 싶다.
모든 도구를 직접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잘 만들어진 외부 서비스를 사용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서비스가 없어졌을 때 내가 쌓아온 작업 방식까지 잃어버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모델이나 실행 환경을 바꾸면 다시 연결하고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생길 것이다. 그래도 무엇을 만들려는지, 어떤 기준을 지켜야 하는지, 어떻게 결과를 검증할 것인지까지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태는 피하고 싶다.
도구는 바뀔 수 있어도, 그 도구를 사용하며 쌓은 판단과 경험은 다음 선택에 이어졌으면 한다.
그 기반 위에서 만들고 싶은 서비스
이런 환경을 만들려는 이유는 내가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지와도 연결되어 있다.
나는 한 사람이 1천 ~ 2천 명을 깊이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만드는 일이 가능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미 확인한 사업 성과라기보다, 내가 가능성을 보고 나아가려는 방향이다.
서비스를 만드는 비용이 낮아질수록, 각 사람의 취향과 상황에 맞추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내가 떠올리는 것은 일종의 오마카세 같은 서비스다. 내가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 맞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작은 기능 하나만 제공하고 끝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필요를 깊이 다루면서, 그와 연결된 필요도 어느 정도 함께 해결하고 싶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폭을 가진 서비스다.
그런 서비스를 혼자 지속해서 만들고 운영하려면, 반복되는 일마다 내 시간을 처음부터 다시 쓰기는 어렵다. 자료를 찾고, 같은 기준을 설명하고, 이미 겪은 실수를 다시 고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사람을 이해하고 경험을 다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다.
내가 작업 환경의 일관성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복되는 일을 안정적으로 맡길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 사람마다 다른 상황과 아직 답을 정하지 못한 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일을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기
발표에서는 이런 축적을 ‘AI 복리’라고 표현했다. 다음 일을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잘된 요청과 수정 사항, 업무 기준과 좋은 예시, 실제로 실행해 확인한 검사 방법을 남긴다. 다음에는 그것을 불러와 사용하고, 달라진 조건을 갱신한다. 모델이 저절로 나를 학습한다는 의미도, 누구에게나 같은 성과가 보장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시도하고 확인하고 기록하고 고치는 과정이 있어야 쌓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기반을 만드는 데 시간이 든다. 무엇을 맡길지 정하고, 필요한 자료를 연결하고, 잘못된 결과를 발견할 방법도 준비해야 한다. 당장 한 번의 작업만 놓고 보면 내가 직접 처리하는 편이 더 간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은 내가 만든 skill이나 문서의 개수가 아니다. 같은 설명을 덜 하게 되었는지, 이미 겪은 실수를 다시 발견하느라 시간을 쓰지 않게 되었는지, 준비와 검토, 재작업까지 포함했을 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를 보고 싶다.
작업을 한 번 마칠 때마다 결과물과 함께 다음에 다시 사용할 방법도 남길 수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어떤 판단을 기준으로 남길지, 어떤 반복 작업을 도구로 만들지, 어디에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지 구분하는 것이 지금 내가 풀어가려는 과제다.
물론 환경을 만드는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발표에서도 결국 돌아가고 싶었던 곳은 더 나은 일의 결과와 삶의 여유였다.
내가 AI를 쓰면서 남기고 싶은 것은 다음 일을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기반이다. 그 위에서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더 잘 만들고, 삶에는 조금 더 여유를 남기고 싶다.
